본문 바로가기

insight

[Exhibition] 덕수궁 현대미술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문학'과 '예술'에 헌신하며 역설적인 시대를 살아 내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
-가난하고 모순으로 가득 찼던 시대 한가운데에서도 정신적으로 그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예술가들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5월 30일까지 하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10년부터-1945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는 일제 강점기는

통상적으로 '암흑'의 시대, '절망'의 시대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그 시대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으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물론 식민지화된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 같이 근본적으로 모순된 사회 구조를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이전의 전통 사회와 지금의 현대 사회를

잇는 엄청난 변혁의 시기로, 상상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신문화의 충격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튕겨냈던 '역동'의 시대였던 것도 사실이다.

빠른 속도로 착륙한 서양의 새로운 사상, 철학, 지식, 그리고 문화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자극했고, 또한 매료시켰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이번 전시는 1930-194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을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에 헌신하며 이 역설적인 시대를 살아 내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프랑스의

에꼴 드 파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방과 술집에 모여 앉아,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 인식을 공유하며,

함께 '지식의 전위'를 부르짖은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떠한 사회적 모순과 몰이해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믿고 이를 함께 추구했던 예술가들

사이의 각별한 '연대감'을 통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갈

추동력을 얻었습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 근대기 문학인과 미술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들을 발굴하고 소개한 이번 전시를 통해,

비록 가난하고 모순으로 가득 찼던 시대 한가운데에서도

정신적으로 그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예술가들의 멋진 신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관에서는 '전위와 융합'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1933년 이상은 경성의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어 주변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특별한 장식이 없어 '희멀쑥한 벽'에는 온통 누런 색을 띤

우울한 인상의 이상의 자화상과 그의 화우 구본웅의 야수파풍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또 쥘 르나르, 장 콬토의 경구가 쓰인 액자가

붙어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 개의 의자와 탁자가 가구의 전부인 이 초라한

다방에서 예술가들은 미샤 엘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지금 막 명치좌에서 개봉된 르네 클레르의 영화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930년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현대성'의 징후들을

이미 모두 체험하고 흡수하고, 또한 거기에 반응했던 시기였다.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서양의 온갖 문화적 충격에 직면하여,

가장 최첨단의 '전위'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했던

예술가들이 1부에서 소개된다.

이상, 박태원, 김기림 등 문인들과, 구본웅, 황술조, 길진섭,

김환기, 유영국, 김병기 등의 화가들이 야수파와 초현실주의, 다다와 추상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도 가장 앞서갔던 전위적 양식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문학과 미술, 음악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이질적인 문화가 혼종된 독특한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축해갔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예술은 빈곤이 해결된, 풍요로운 대륙에서 피는 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집트 문명부터 르네상스, 그리고 팝아트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누구나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단단하고, 숭고했던 우리 민족의

뜨거웠던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수경, 무제

위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제작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공작새'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합니다. 비록 일제강점기 가난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시대를

관통하면서도, 예술가들은 '고결하고', '찬란한' 정신세계를 유지했습니다.

몸집에 비해 비대하고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거대한 고리를 지녔지만,

공작새는 그 존재만으로 우아한 기품을 뿜어냅니다.

아직 화려하게 날개를 펴지는 못했지만, 이 빛나는 공작은 그 시대를

살아내었던 모든 예술가들에 대한 오마주인 것입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관람 포인트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들을 감상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작가들이 각기 어떠한 시점을 가지고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갔는지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2관에서는 '지상의 미술관'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 2 전시실에서는 1920-1940년대를 중심으로 한 '인쇄 미술'의 성과를

보여준다. 3.1운동 이후 설립된 민간신문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인들과, 당대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신문소설의 삽화가들이

만나 이루어 낸 특별한 '조합'의 결과물이 보여진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안석주, 노수현, 이상범, 정현웅, 이승만, 김규택을 비롯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삽화가들의 흔적을 풍부하게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신문사의 자매지로 발간된 잡지에서는 문인과 화가의 결합을 통해

아름다운 '화문'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 잡지를 통해 처음 발표된 시의 원전과 독창적 감성으로

충만한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편, 소설가 이태준이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이라고 표현했던, 근대기의 가장 아름다운 "책"들이

엄선되어 전시된다. 윤동주도 필사해서 봤다는 100부 한정판

백석의 '사슴'에서부터 김소월의 '진달래꽃', 서정주의

'화사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등 당대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책들의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개인적으로 2관에서는 책의 표지와 에세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마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칫 하면 지루할 수 있는 전시 구성에,

책을 음성으로 읽어주고, 그 시대의 느낌이 나도록

인쇄하여 다양하게 그 시절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3관에서는 '이인행각'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 3 전시실에서는 1930-1950년대 문인과 화가들의 개별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종교를 매개로 절대적인 정신성의 세계를 추구했던 시인 정지용과 화가 장발의 만남을 시작으로,

조선일보사 편집실의 옆자리에 앉아 순박하고 아득한 시의 세계를 갈구했던

시인 백석과 당대 최고의 장정가, 삽화가였던 정현웅의 조우를 확인할 수 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또한 조선일보의 사회부장과 신입 기자로 처음 만나 누구보다 지적이고

댄디한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세계사적 흐름 위에서 조선의 당대적 위치를

적확하게 가늠할 수 있었던 이여성과 김기림의 만남도 확인되며, 마지막으로 일본 유학시절에

낭만주의적 예술관을 공유했다가 결국 조선의 ‘옛 것’이 주는 아름다움에 심취했던

이태준과 김용준의 교유를 만나볼 수 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또한, 이들의 유산을 계승한 다음 세대 예술가들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시인 김광균을 시작으로 한 이미지즘의 세계, 즉 “시를 그림과 같이, 그림을 시와 같이”여겼던

다재다능한 ‘후예들’의 작품들이다. 김광균, 김만형, 오장환, 이중섭, 구상, 이쾌대, 진환,

서정주, 김환기, 이봉구, 조병화 등 시인과 화가들의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망을 통해,

한국 근대기 가장 아름다운 시와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던 풍요로운 문화적 토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개인적으로 3 전시실에서는 중간중간 적혀있는 글들을 놓치지 않고

정독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화가들의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며

더욱 넓게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최재덕 <금붕어>

최재덕은 보성고보를 거쳐 도쿄의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여,

1940년대 근대기 화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화가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한국전쟁 중 월북하여 그가 남한에 남긴 작품은 아쉽게도 몇 점 되지 않는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최재덕 <한강의 포플라 나무>

<한강의 포플라 나무>는 한때 시인 김광균이 소장했던 것으로,

최재덕의 얼마 안되는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예에 속한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배경으로 뱃사공이 한가로이 노를 젓는 가운데,

포플라 나무들이 과감하게 화면의 전면을 뒤덮고 있다.

나무 잎사귀들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흔들리는 것 같다.

대담한 화면 구성과 미묘하고 섬세한 색채의 변주가 작가의 뛰어난 감각을 엿보게 한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김환기 <가을>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 주제와 가장 잘 어우러졌던 작가 중 하나가 김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핏보면 단순히 풍경화 같기도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기를

고려하면 왠지 모르게 그의 작품이 차갑고, 단단해보입니다.

우리 민족의 외유내강을 담은 것만 같은 작품들이였습니다.

4관에서는 '화가의 글/그림'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 4 전시실에서는 일반적으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재능 또한 남달랐던 예술가 6인의

글과 그림을 함께 보여준다. ‘근원수필’의 저자로, 소박하고 진솔한 수필가로 더욱 유명한 근원 김용준,

‘강가의 아틀리에’ 라는 수필집의 세계관에서 보이듯 언제나 단순하고 순수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화가 장욱진,

많은 문학인들의 친구로, 평생 자연과 산을 사랑했던 화가 박고석의 글과 그림이 각각 전시된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김용준 <기명절지 10폭 병풍>

또한, 따뜻한 시선으로 한국 전쟁 이후의 일상과 삶을 담아낸 한묵,

자전적이며 인간 내면의 감정에 솔직한 수필로 더욱 대중적 사랑을 누렸던 천경자,

마지막으로 1930년대부터 주요 잡지에 화문을 싣기 시작하여 그림만큼이나

감동적인 일기와 편지, 수필을 남겼던 화가 김환기의 작업이 소개된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실에서는 각각의 예술가들의 그림을 보는 공간과 글을 읽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글과 그림을 모두 사랑했던, ‘두 개의 뮤즈’를 지녔던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면모를 함께 감상함으로써,

이들의 내밀한 세계 속으로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원문 :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는 유명 작가인 천경자, 이중섭 등

다양한 작가를 평소와는 다른 시점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품이 정말 무수히 많기에 관람 소요시간이

꽤 길어, 여유있게 2시간 정도를 잡고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의 글과 문체를 느끼며

그들의 아픔과 힘듦에 깊게 교류하는 듯한 느낌이였습니다.

우리 역사이기에 더 아픔을 공감할 수 있어

애틋하면서도 가슴 벅차오를 정도로 자랑스러운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나들이 겸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예술 기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ditor |  유하영